새로운 계시: 1937-1950

E. 워치만니의 사역의 회복: 1948

복주 특별집회를 마치고서 그들은 다시 워치만니와 함께 이 주간을 더 머물면서 그와 교통을 가졌고 그의 사역이 속히 회복되기를 바랐습니다. 다른 동역자들과 인도자들도 이러한 교통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 그곳을 떠나기를 싫어했으며, 그들도 교통에 참여할 수 있도록 워치만니의 허락을 받아달라고 그들에게 부탁해 왔습니다. 처음에 그는 허락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거듭되는 간청으로 그들의 참여에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에게서 조금 떨어진 응접실 한 쪽에 앉아서 듣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오직 왕포진 자매와 리라헬 자매와 위트니스리만이 그와 함께 앉아서 교통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위트니스리는 그에게 복건성과 광동성의 교회들 가운데 혼란이 가득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는 즉시 답변해주었고, 예루살렘의 노선에 관한 메시지를 전해 주었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그의 입에서 한 시간 이상이나 흘러나왔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놀란 채 그곳에 앉아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멀리 앉아 있던 한 자매가 갑자기 일어나서, “우리는 왜 즉시 니 형제님의 메시지에 따라 실행하지 않습니까?”라고 외쳤습니다. 워치만니는, “여러분들이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면 여러분 자신을 사역에게 맡겨야 합니다. 여러분의 헌신을 서명으로 표명하고 그것을 이 형제님에게 주십시오.”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들은 워치만니의 말대로 그렇게 했습니다.

복주 교회의 인도하는 형제들은 이 일을 듣고서 그날 저녁 그들 자신과 그 교회를 사역에 맡겼습니다. 이것은 그 지방의 성도들을 분발시켰으며, 워치만니는 온 교회의 집회를 열기로 결정했습니다. 워치만니는 위트니스리에게 집회에서 교통을 하도록 요청했지만, 그는 강하게 만일 워치만니가 가서 말씀을 교통하지 않는다면 위트니스리는 심지어 집회도 참석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담을 갖고 그 집회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들이 다 알듯이 이것이 그의 사역의 회복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들 수백 명은 이로 인해 기뻐했습니다. 이 일은 1948년 3월에 발생했습니다.

위트니스리는 곧 이어서 그에게, 사십여 동역자들과 갈망 있는 자들이 사월에 상해에서 열리는 특별집회에 참석할 것이고 시간도 이미 정해졌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위트니스리가 워치만니에게 특별집회를 인도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묻자 그는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포도나무의 일생에 관한 그 영적인 이야기를 노래하자고 요청했습니다. 그는 많은 해 동안의 고난이 그 찬송을 부름으로써 그의 영적인 정감으로 표현되기를 원했습니다.

상해 특별집회 중 한 집회에서 그는 포도나무의 일생에 관한 그 영적인 이야기를 노래하자고 요청했습니다. 그는 많은 해 동안의 고난이 그 찬송을 부름으로써 그의 영적인 정감으로 표현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위트니스리는 그것을 운율에 맞췄고, 그들은 집회에서 그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때의 특별집회는 상해의 부흥을 더 확대시켰습니다. 그 특별집회를 통해 워치만니의 사역은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고령산의 훈련센타에서 육 개월 간의 훈련을 갖기로 결정했습니다. 왕포진 자매와 이연여 자매와 위트니스리는 상해에 머물면서 교회를 돌보고 훈련에 쓸 것을 공급하도록 안배되었습니다. 1948년에 상해교회의 집회 참석 인수는 크게 증가했습니다. 그러므로 비교적 큰 집회 장소를 건축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그들은 남양로의 땅 한 필지를 샀는데, 그 가격은 금괴 이백 십 일 개에 해당하며, 미화로는 약 십만 오천 불로서 삼 회 분할로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 당시 교회에는 일회 분할금의 절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날 워치만니는 위트니스리를 자기 집으로 불렀습니다. 그가 도착하자 워치만니는 미화로 만 팔천 오백 불이나 되는 서른 일곱 개의 금괴를 위트니스리에게 건제 주었습니다. 그것은 첫회 분할금의 나머지 절반을 충당하기에 충분한 액수였습니다. 그는 위트니스리에게 상해 교회 집회소의 땅 구입시를 대비해 특별히 마련해놓은 돈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1. 대만으로의 확산을 준비

또한 그때 그는 주의 회복이 대만으로 확장되어야 할 필요를 느꼈고, 이를 위해 당시 대만성의 도청 소재지인 대북에서 땅을 살 부담을 가졌습니다. 대북의 사업하는 한 형제가 그를 위해 이 일을 처리해 주겠다고 하자 워치만니는 그에게 얼마의 돈을 부쳐 주었습니다. 그 형제가 상해 특별집회에 참석했을 때 왕포진 자매와 위트니스리는 그가 돈에 있어서 성실하지 않다는 인상을 깊이 받았습니다. 어느 날 워치만니가 위트니스리에게 얼마의 돈을 그 형제에게 보내 주라고 했을 때 왕포진 자매와 위트니스리는 기회를 붙잡아 그 형제에 대한 그들의 느낌을 표현했습니다. 그는 주님은 유다가 돈을 훔칠 줄 알면서도 여전히 그에게 돈을 맡겼다고 답변했습니다. 위트니스리는, “이 점을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지만, 그는 아무런 설명도 덧붙이지 않았습니다.

  1. 워치만니에게 계속해서 훈련받음

이후에 위트니스리는 대만으로 보내심을 받았는데, 워치만니는 위트니스리에게 그 형제를 찾아가서 그에게 보내준 돈에 대한 장부를 계산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위트니스리는 대북의 한 장로를 데리고 그 형제에게 가서 장부에 관한 것을 물었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한 무더기의 이자 계산서를 제시하면서, 워치만니는 여전히 그에게 많은 이자의 빚을 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위트니스리는 그때 대화한 과정을 워치만니에게 편지로 보고했지만, 이 문제에 관해 그로부터 더 이상 지시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그들이 주님의 일에 대해 교통하고 있을 때, 워치만니는 위트니스리에게 어떤 지방에 갔느냐고 물었습니다. 위트니스리가 그 지방 교회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기 위해 갔다고 대답하자, 그는 그것은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무슨 일이든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할 때 그 일이 아무리 선하고 영적이고 성경적일지라도 여전히 정치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직 주님의 인도를 따르는 것만이 정치하는 것이 아니며, 당신이 주님의 인도를 따라 그곳에 갔다고 말할 수 없는 한, 당신은 정치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같은 해(1948년), 그는 상해교회의 무거운 책임으로 인해 위트니스리를 그곳의 장로로 세워서 그 상황을 돕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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