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계시: 1937-1950

G. 위트니스리와 워치만니의 마지막 접촉

  1. 1950년 워치만니는 위트니스리를 홍콩으로 부름

1950년 초, 워치만니는 중국 대륙에서 나와 홍콩을 방문했습니다. 그의 사역으로 인해 그곳에서 부흥이 일어나자 그는 대만에 있는 위트니스리에게 전보를 쳐서, 그가 중국 대륙으로 돌아가기 전에 그곳에서 위트니스리를 만나자고 했습니다. 위트니스리는 대북에서 중요한 특별집회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떠나기 전에 홍콩에 도착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보를 보냈습니다. 그의 답변은, 그가 홍콩에 계속 있든 없든 위트니스리가 틈이 날 때 홍콩에 와서 그 지방 교회의 봉사를 안배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2월 16일에 위트니스리는 홍콩에 도착하여 거기서 한 달 반 동안 머물렀습니다.

다음은 그 기간 동안 홍콩 교회의 장로였던 쉬찐칭 형제의 간증입니다.

1950년 2월 15일 저녁, 니 형제님은 우리에게 “오늘 오후 나는 이 형제님의 전보를 받았습니다. 그는 내일 홍콩에 도착하여 장로들과 책임 형제님들과 교통을 가질 것입니다. 또한 나는 그에게 여기에서 인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내일 오전에 그가 도착하니 여러분들은 공항으로 마중나가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이때 나는 이미 장로였기 때문에 형제 자매들이 다음 날 치더 공항에 나가 그를 영접하도록 안배했습니다.

  1. 실지적인 교회 책임들에 대한 훈련

위트니스리가 도착한 다음 날 아침, 워치만니는 위트니스리를 동역자들과 인도자들의 집회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 앞에서, “이 형제님, 주님이 이 형제님에게 주신 권위에 따라 이곳에서의 모든 동역자와 장로와 집사들의 봉사를 안배해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홍콩 교회의 봉사를 위해 좋은 기초를 닦아 주는 막중한 책임이었습니다.

  1. 말씀하는 것에 대한 훈련

저녁에 워치만니는 위트니스리를 부흥 집회로 인도하여 거기서 위트니스리에게 말씀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위트니스리는, “형제님이 계시면 나는 말씀을 전할 부담이 없게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계속하여 그 특별집회에서 사역했습니다.

  1. 문서 보급에 대한 훈련

위트니스리가 워치만니를 만나러 홍콩에 가기 전, 대만에 있을 때 중국어 찬송가 제2집의 편집 작업을 이미 완성했었습니다. 위트니스리가 원고들을 그에게 보여 주었을 때, 워치만니는 포도나무의 일생에 관한 그 찬송가를 수정하고 몇 구절을 더 추가했는데, 그것이 바로 현재 중국어 찬송가 465장입니다(한국어 찬송가도 동일함).

그때 위트니스리는 워치만니에게, 성경 요도 60과를 썼다는 것과 중국어 찬송가 제1집과 그외 다른 책자들을 재판할 필요가 있음을 말했습니다. 그때 그는 복음서원과 문서 사역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안배했습니다.

1) 복음서원은 상해와 대북과 홍콩 세 지방에 설립해야 하는데 워치만니는 친히 상해 복음서원을 관리하고, 위트니스리는 대북 복음서원을 책임지며, 위광휘 형제는 홍콩 복음서원을 책임지게 했습니다. 또한 워치만니는 문서와 편집의 책임에 있어서 위트니스리에게 홍콩 복음서원을 도우라고 했습니다.

2) 세 복음서원 모두가 공통 판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1975년, 당시의 상황으로 인해 위광휘 형제와 위트니스리와 기타 관련 형제들은 판권에 관한 사항을 다음과 같이 새롭게 안배했습니다. 즉 모든 중국어 서적들은 대북 복음서원에서 출판하고, 모든 영어 서적들은 미국 리빙 스크림에서 출판하며, 홍콩 교회 서실은 다만 홍콩에서 그들의 출판물들을 배포하기로 했습니다.)

  1. 워치만니는 중국 대륙으로 돌아가고 위트니스리는 대만으로 돌아감

홍콩에 있을 때, 위트니스리는 워치만니와 주님이 어떻게 대만의 사역을 축복하셨는지를 교통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위트니스리에게 주님의 일을 위해 대만으로 돌아가서 그곳에 머물도록 격려했습니다.

위트니스리는 워치만니가 대륙으로 돌아가는 일을 매우 염려했기 때문에, 어느 날 그와 이 일에 관해 긴 교통을 가졌습니다. 위트니스리는 워치만니에게, “무엇이 주님의 뜻인지 감히 말하지 않겠습니다. 문제가 너무 크고 엄숙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워치만니는 위트니스리에게, “대륙에 그렇게 많은 교회들이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나는 그들을 돌보기 위해 반드시 돌아가야 하고 주님의 간증을 위해 그들과 함께 서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일에 관해 쉬찐칭 형제는 다음과 같은 간증을 했었습니다:

니 형제님이 홍콩을 떠나기 전, 이 형제님은 여러 차례 그에게 대륙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니 형제님은, “한 어머니가 집에 불이 난 것을 알면서도 그녀 자신은 집 밖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면, 그녀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분명 위험한 줄을 알면서도 그 집 안으로 뛰어들지 않겠습니까? 비록 내가 돌아가면 위험이 따르고 해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곳에 아직도 많은 형제 자매들이 있는데 내가 어찌 다시 돌아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햇습니다. 이 형제님은 버스 정거장에서 되돌아서서 니 형제님의 거처인 보석산까지 세 차례나 그를 수행했습니다.

워치만니는 다른 사람들의 권면에도 불구하고, 삼월 중순 어느 날 그의 처남 장의륜 형제에게 그를 기차역까지 배웅해주도록 부탁하고 대륙을 향해 떠났습니다. 그는 이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었습니다. 얼마 후, 4월 1일에 위트니스리는 대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것이 위트니스리가 워치만니를 마지막으로 본 때였습니다. 그 후로 그들은 서신 왕래도 없었고 다시 서로 대면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들은 워치만니가 주님께 갈 때까지 다만 그의 친척으로부터 그에 관한 소식을 간접적으로 들었을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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