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부르심 안에서의 관계: 1925-1935

D. 일을 시작함

1933년 10월, 상해에서 워치만니위트니스리를 그의 손님으로 맞았습니다. 위트니스리는 약 사 개월 동안 그와 함께 묵었는데, 그 기간 동안 그는 많은 것들에서 위트니스리를 온전케 하였습니다.

  1. 워치만니가 위트니스리를 훈련함

이러한 일들에 있어서, 그가 한 것에 대해 분명한 것도 있었고, 당시 위트니스리에게 분명치 않은 것들도 있었습니다. 위트니스리는 그와 많은 시간을 함께했습니다. 한 번 만나면 몇 시간을 보냈고, 위트니스리는 항상 그에게 말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위트니스리는 자신이 말할수록 더 어리석게 됨을 알았기 때문에 말을 하기를 원치 않았고 모든 시간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는 위트니스리와 허탄하고 무익한 것을 말하지 않고 언제나 기회를 붙잡아 주로 다음 네 가지 일을 위트니스리에게 말했습니다.

  1. 워치만니는 위트니스리가 주님을 생명으로 알도록 도움

    워치만니는 주님이 생명이심을 알도록 위트니스리를 도왔습니다. 그와 함께 있기 전에도 위트니스리는 주님을 사랑했고 성경에 관한 많은 교리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위트니스리는 생명에 대해 분명치 않았습니다. 그와 함께 있는 기간을 통해서 위트니스리는 비로소 눈이 열려 생명에 속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주님은 그에게 말씀하셨고 그의 눈은 열려졌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자신이 그의 인내이심을 보았습니다.

    어느 날 오후 그들은 함께 앉아 있었는데, 두 사람 다 할 말이 없었습니다. 위트니스리는 소파에 앉아 있었고 그는 흔들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의자를 흔들면서, “이 형제님, 인내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위트니스리는 이 질문이 너무 단순해서 어떻게 답변해야 할지 몰라 난처했습니다. 물론 모두가 인내가 무엇인지 압니다. 그러나 이 질문이 그의 입에서 나왔기 때문에 거기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었습니다. 그는 계속 의자를 흔들면서, “인내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당시 위트니스리는 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에게는 부담이 있었지만 위트니스리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위트니스리는, “저더러 말하라면 인내는 일종의 견딤입니다. 누가 학대하거나 핍박할 때 그 고통을 견디는 것이 바로 인내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고개를 흔들면서, “아닙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위트니스리가, “그럼 인내가 무엇인지 제게 알려 주십시요.”라고 말하자 그는, “인내는 바로 그리스도입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위트니스리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그에게 외국어 같았습니다. 위트니스리가, “형제님, 형제님은 인내가 그리스도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게 무슨 뜻입니까? 저에게 설명해주시겠습니까?”라고 말하자 워치만니는 고개를 흔들면서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만, “인내는 곧 그리스도입니다.”라고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위트니스리는 그 물음에 당황했을 뿐 아니라 심히 곤란함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그러한 상태로 있었습니다. 위트니스리는 다른 질문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도 다른 말 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는 워치만니가 의미한 것을 알고자 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설명이 없자 위트니스리는 완전히 실망했습니다. 저녁 때가 되어서 결국 위트니스리가, “니 형제님, 시간이 되어서 저는 저녁 먹으러 돌아가야 겠습니다.”라고 말하자, 그는 “좋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위트니스리는 숙소에 돌아와서 정말 곤란에 빠졌습니다. 그는 방에 들어가, “주여, 인내가 그리스도라는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주님은 그에게 말씀하셨고 그의 눈은 열려졌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자신이 그의 인내이심을 보았습니다. 참된 인내는 어떤 행위가 아닌 그에게서 살아 나타나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이것을 보았습니다! 워치만니는 바로 이렇게 생명에 있어서 그에게 크나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2. 워치만니는 또한 그가 구원받은 해로부터 그때까지의 주님의 움직이심에 관한 역사를 위트니스리에게 말해줌.

    그 교통 기간에 워치만니는 또한 그가 구원받은 해로부터 그때까지의 주님의 움직이심에 관한 역사를 위트니스리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주의 회복의 처음 십 년 동안 위트니스리는 전혀 교회 안에도 사역 안에도 있지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많은 시간을 들여 그 기간 동안 주님의 움직임에 관한 일들을 위트니스리에게 전해 주었는데, 간략하게가 아니라 아주 상세하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 당시 위트니스리는 그가 그러한 일들을 그에게 말해 주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후에 그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특별히 위트니스리를 온전케 하고 세우기 위해 그런 말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좋은 기초를 놓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3. 워치만니는 일세기부터 오늘날까지의 교회 역사에 관한 일들을 위트니스리에게 가르쳤음.

    워치만니는 일세기부터 오늘날까지의 교회 역사에 관한 일들을 위트니스리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는 교회에 관련하여 발생한 모든 주요 사건들을 위트니스리에게 상세히 설명해 주었고, 그가 말하는 방식은 매우 의미 깊었습니다. 그는 주의 회복의 방면에서 말했고 주의 회복의 목표를 향해 말했습니다.

  4. 워치만니는 산 방식으로 성경을 알도록 위트니스리를 도왔음.

    워치만니는 또한 산 방식으로 성경을 알도록 위트니스리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위트니스리는 형제회로부터 의문의 방식으로 성경을 알도록 도움을 받았지만, 그는 생명의 방식으로 성경을 알도록 위트니스리를 도왔습니다.

    그들의 모든 대화에서, 위트니스리는 이 네 가지에서 그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생명과 교회와 일에 있어서 그는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위트니스리의 일에 좋은 기초를 닦아 주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위트니스리가 성경을 연구하고 있을 때, 그는 위트니스리의 방에 와서 그의 침대 위에 두 세트의 낡은 책을 놓아 두었습니다. 그는, “이 책들은 당신에게 주는 것입니다.”라고 말하고는 즉시 떠나버렸습니다. 한 세트는 다섯 권으로된 다비의 “성경 개관”이었고, 다른 한 세트는 네 권으로 된 “영어 독자를 위한 알포드 신약 성경”(Henry Alford's New Testament for English Readers)이었습니다. 위트니스리는 그가 이 두 세트의 책을 그에게 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데 있어서 그를 온전케 하기 위함임을 알았습니다.

  1. 워치만니가 위트니스리를 시험함

이 외에 또한 워치만니는 위트니스리를 사역에 참여할 수 있고 상해에 있는 지방 교회안에서 사역할 수 있는 위치에 두었습니다. 이것은 위트니스리가 주님을 섬기는 것을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위트니스리를 이러한 위치에 두기 전에 먼저 그를 시험했습니다. 그의 시험하는 방식은 은밀했습니다. 처음에 위트니스리는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위트니스리는 그가 시험받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 일 이전에 그들은 편지로 수 년 동안 왕래했었지만, 그는 아직도 참되게 위트니스리를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함께 오랜 시간을 지내는 동안, 그는 위트니스리를 관찰했고 은밀히 시험했습니다.

    1. 말씀전하는 것에 관한 훈련

위트니스리가 상해에 도착한 후, 그는 즉시 그에게 주일 낮 집회에서 설교하도록 요청했습니다. 이것은 위트니스리를 놀라게 했지만, 위트니스리는 마태복음 13장 53절부터 17장 8절까지에서 영광을 향한 노정에 관해 긴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당시 상해 교회는 두 군데의 집회 장소에서 모였습니다. 주된 집회 장소는 제 1집회소였고, 제 2집회소는 비교적 비중이 덜했습니다. 위트니스리가 상해에 도착한지 얼마 안 되어서 형제들은 그를 위해 제 2집회소에서 특별집회를 열도록 안배했습니다. 위트니스리는 그것이 그를 약간 시험하기 위한 워치만니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고 믿습니다. 매일 저녁 말씀을 전함으로써 위트니스리는 모두에게 드러났습니다. 위트니스리는 약 일 주일간 시험을 받았습니다. 워치만니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지만, 위트니스리가 전한 메시지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항상 그에게 전해졌습니다. 위트니스리는 그가 시험에 통과되었기 때문에 후에 제 1집회소에서 정규적으로 말씀을 전하도록 당부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1. 편지 답변에 관한 훈련

하루는 워치만니가 각지에서 온 편지 한 꾸러미를 가져왔습니다. 그것들은 그에게 교회와 교회의 실행과 생명과 성경 해설에 대해 묻는 내용의 편지들이었습니다. 그는 위트니스리에게, “이 형제님, 나는 너무 바빠서 이러한 일을 할 시간이 없으니 형제님이 나를 대신해 이 모든 질문들에 답변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위트니스리는 이것 또한 일종의 시험이라는 것을 생각지 못했지만, 이것 역시 분명 하나의 시험이었습니다. 위트니스리가 그에게,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답변할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그는, “괜찮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저에게 물어보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의 긍휼로 위트니스리는 모든 편지에 대해 답변해주었습니다. 위트니스리가 답변한 가장 긴 편지는 종파와 교회의 구조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워치만니는 이것을 매우 소중히 여기면서 제4기와 5기 “통문휘간”(Collection of Newsletters)에 실어 주었습니다.

    1. 특별집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훈련

워치만니의 제 3차 이기는자 집회는 1934년 1월에 상해에서 열렸습니다. 전국 각지로부터 많은 동역자들과 성도들이 그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외지에서 온 분들은 거의가 집회가 시작되기 전 주일날 도착했습니다. 주일 아침에 그들은 모두 워치만니의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위트니스리에게 짧은 글이 적힌 메모지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 안에는 위트니스리더러 그 집회에서 말씀을 전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위트니스리와 집회 참석자들은 다 그가 집회에 나타나지 않은 것에 대해 놀랐습니다. 그러나 위트니스리는 그의 요구에 따라 집회에서 말씀을 전했고 새로운 체험을 얻었습니다.

  위트니스리의 눈이 열려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에 따라 만유 안에서 으뜸 되심을 보았습니다.

그 십 일 간의 집회에서 위트니스리는 그의 메시지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메시지들은 너무나 좋았고 위트니스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인 생활과 교회 생활에 있어서 참된 전환을 갖게 했습니다. 위트니스리의 눈이 열려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에 따라 만유 안에서 으뜸 되심을 보았습니다. 위트니스리는 그의 모든 메시지들을 간략하게 노트에 기록하여 두었는데, 결국 1934년 3월, 4월 부흥보에 그것을 실었습니다.

    1. 성경읽기에 관한 훈련

특별집회 전 어느 날, 그들은 함께 교통을 가졌습니다. 그때 그는 위트니스리에게 매일 성경을 어떻게 연구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위트니스리는 그에게 사도행전과 골로새서를 읽고 있다고 대답했는데, 그는 즉시 이 두 권의 책은 아주 좋은 한 쌍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처음에 위트니스리는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결국 위트니스리는 도움을 받아서 사도행전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하늘로 승천하여 주와 그리스도로 세워지셨는가를 계시해주고(행2:36), 골로새서는 그리스도께서 만물의 으뜸이 되시고 하나님의 경륜의 모든 것 되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심을 계시해 준다는 것을 보았습니다(골 1:18, 3:11). 위트니스리의 그리스도인 일생 중에서 특히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계시에 관해서 이렇게 심오하고 신선하게 성경을 알도록 도와준 사람을 달리 만나지 못했습니다.

    1. 복음 메시지를 전하는 훈련

한번은 상해 교회 1집회소에서 복음 집회를 갖기로 했는데, 아무도 누가 강사인지 몰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워치만니가 말씀을 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위트니스리는 아주 마음놓고 그의 메시지를 들을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어떻게 복음을 전하는가를 많이 배우기를 원했습니다. 집회가 시작되기 한 시간 쯤 전에 어떤 사람이 문을 두드리고 이런 내용이 적힌 메모지 한 장을 건네 주었습니다. “이 형제님, 오늘 저녁 형제님이 복음 메시지를 전하십시오.” 위트니스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위트니스리는 그가 말씀을 전하는 동안 워치만니가 문 뒤에서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워치만니는 그 모든 것을 들었습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위트니스리는 워치만니가 계속 그를 시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날 저녁 위트니스리는 요한복음 16장으로부터 그 영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는 것에 대해 말씀을 전했습니다. 위트니스리는, 죄에 대하여라 함은 우리가 아담에서 났기 때문이고, 의에 대하여라 함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이고,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우리가 사탄을 좇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여기에 아담과 그리스도와 사탄 세 인격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아담 안에서 죄인으로 태어났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으로 돌아와서 그분을 우리의 의로 취함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도록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우리는 아담에게서 그리스도 안으로 옮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면 아담 안에서 여전히 죄있는 채로 남아 있으며, 어느 날 사탄과 함께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말했습니다. 이 메시지를 전하는 동안 위트니스리는 그 집회에서 워치만니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워치만니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고 또 그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동안이 지난 후, 어느 날 함께 산보하는데 워치만니는 갑지기 위트니스리를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형제님, 중국에서 형제님과 같이 요한복음 16장으로부터 죄와 의와 심판의 세 가지 요점을 아담과 그리스도와 사탄에 관련시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나는 형제님이 계속 이렇게 전진할 것을 격려합니다.” 이 말을 듣고 위트니스리는 혼자서, “그가 어떻게 이 일을 알았을까?”하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위트니스리는 그가 말씀을 전하는 동안 워치만니가 문 뒤에서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워치만니는 그 모든 것을 들었습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위트니스리는 워치만니가 계속 그를 시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1. 한 흐름의 사역에 대한 이상

위트니스리는 사도행전 전체를 통해 이 땅에서의 주님의 역사가 오직 한 흐름임을 보았습니다. 이 흐름 안에 있지 않은 일들은 무엇이든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1934년에 위트니스리는 약 사 개월 간 머물렀는데, 하루는 워치만니가 위트니스리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형제님, 이곳에 있는 동역자들은 형제님이 가족들을 상해로 데려오고 우리와 함께 동역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 일을 주님 앞에 가져가 보시고 주님이 어떻게 형제님을 인도하시는지를 보십시오.” 위트니스리는 이 일을 주님 앞에 가져갔는데, 그때 그의 눈이 열려서 매우 의미 깊은 사실을 한 가지 보게 되었습니다. 위트니스리는 사도행전에서, 은혜의 보좌로부터 시작하여 예루살렘에 흘렀던 오직 한 흐름이 이 땅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를 거쳐 북쪽 안디옥까지 흘렀고, 그 다음 안디옥에서 서쪽을 향해 소아시아와 유럽으로 흘렀습니다. 위트니스리는 사도행전 전체를 통해 이 땅에서의 주님의 역사가 오직 한 흐름임을 보았습니다. 이 흐름 안에 있지 않은 일들은 무엇이든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바나바가 바울과 헤어졌을 때 다른 흐름이 시작되었는데, 그때로부터 사도행전에서는 그의 일에 대한 기록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행 15:36-41). 나중에 일어난 디모데와 아볼로 같은 동역자들은 주님의 일을 위해 일으켜진 후, 비록 그들이 이 목적을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갈 필요는 없었지만 다 주님의 움직이심의 한 흐름 안으로 합류하였습니다(행 16:1-3, 18:24-28). 주님은 중국에서의 그분의 사역의 흐름이 하나여야 한다는 것을 위트니스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이 흐름이 상해에서 시작되었으므로 그는 북쪽으로 가서 다른 흐름을 갖지 말아야 했습니다. 만일 주님이 북부 지방에서 무엇을 하고자 하신다면, 그는 반드시 먼저 상해 안으로 흐름에 들어가야 하고, 그럴 때 상해의 흐름이 결국 북부 지방에 흐르게 될 것입니다. 비록 북부 지방에서 어떤 일이 시작되었지만, 그는 한 흐름에 대해 매우 투명하고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이 이상을 봄으로써 그는 워치만니의 특별집회가 끝난 후 북부에 돌아가 한동안 머문 다음 다시 상해로 돌아와서 그와 함께 거하며 동역했습니다. 그러므로 중국에서의 주님의 역사에는 오직 한 흐름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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