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부르심 안에서의 관계: 1925-1935

C. 첫번째 대면

두 형제와 위트니스리는 그후 함께 전에 그들이 있었던 교파에 가서 그들에게 워치만니를 초청하도록 권했습니다. 비록 그들이 그 교파를 떠났지만, 그 둘은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 주었습니다. 그들은 두 사람의 건의를 받아들여 워치만니가 말씀을 전해주도록 초청했습니다. 두종신 형제가 상해로 돌아갔을 때, 위트니스리는 그에게 워치만니가 위트니스리의 고향을 방문하도록 요청해달라고 했는데, 그는 이 요청에 응했습니다. 동시에 치푸 부근의 도시인 황신 남침례회 신학교에서도 워치만니를 초청했기 때문에, 1932년 여름에 그는 이 두 지방에 와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워치만니가 도착했을 때 위트니스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마중을 나갔었는데, 두 사람은 한동안의 편지 왕래로 서로를 어느 정도 알았기 때문에, 처음 만났지만 오랜 친구같이 매우 친숙했습니다. 워치만니는 자기 마음을 열고 그의 마음 속에 있는 일들을 위트니스리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워치만니는 중화 자립회 예배당에서 많은 청중들에게 약 일 주일 동안 말씀을 전했습니다. 위트니스리는 그의 메시지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집회를 마친 후 위트니스리도 그와 함께 황신의 남침례회 신학교에 갔습니다.

  워치만니는 자기 마음을 열고 그의 마음 속에 있는 일들을 위트니스리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 몇 해 동안 오순절 운동이 중국 북부에서 상당한 세력을 얻었는데 워치만니가 설교하던 신학교도 그 운동의 영향을 받았었습니다. 그 집회들에서 위트니스리는 처음으로 오순절파의 괴상한 실행들을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뛰는 사람도 있었고 웃는 사람도 있었고 외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상한 광경들도 있었습니다. 집회를 인도하는 목사가 온 힘을 다해 집회를 진정시킨 후에야 워치만니는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누가복음 15장으로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는 감동적인 복음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 집회를 마치고서 워치만니는 위트니스리와 함께 걸어서 집으로 갔습니다. 길을 가면서 위트니스리가 그에게, “이게 무슨 집회 방식입니까? 외치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땅에 뒹굴기도 하다니요?”라고 묻자, 그는 신약에는 우리가 어떻게 집회를 갖는가에 대한 어떤 규례도 없다고 답변해 주었습니다. 그의 말은 위트니스리를 놀라게 했고, 위트니스리로 하여금 워치만니가 오순절파의 괴상한 실행들을 찬성하고 있지는 않나하고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결국 위트니스리는 그가 그러한 실행을 찬성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워치만니는 어떤 외적인 형식에 대해서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위트니스리는 신학교 숙소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오순절파의 모임이 있었으나 워치만니가 설교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트니스리는 방에서 주님을 가까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는,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는 이사야서 44장 22절 말씀을 읽었습니다. 이 말씀을 읽고 있을 때 그는 깊은 속에서 주님이 그분을 섬기도록 그를 부르고 계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21절 말씀을 약속으로 주셨다는 것을 깊이 느꼈습니다. “너는 내 종이니라...너는 나의 잊음이 되지 아니하리라.” 23절 말씀도 그에게 아주 분명했었는데, 그 구절은 그분의 부르심의 목표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이스라엘로 자기를 영화롭게 하실 것임이로다”. 그때 주님의 임재는 그에게 매우 참되었고 그는 깊이 기름부음을 만졌으며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소생되었고 기쁨과 격려로 충만했습니다.

그때 주님의 임재는 그에게 매우 참되었고 그는 깊이 기름부음을 만졌으며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소생되었고 기쁨과 격려로 충만했습니다.  

신학교에서의 집회를 마치고 나서 워치만니는 치푸로 돌아와 위트니스리의 집에서 이 삼 일 간 묵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권익에 관한 아주 좋은 교통을 가졌었습니다.

위트니스리의 집에 묶는 동안, 워치만니는 위트니스리의 고향에 있는 뉴톤 형제회의 창시자인 버네트씨를 자기에게 소개시켜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버네트씨는 연장한 사람이었고 형제회의 교사 뉴톤(Benjamin Newton) 아래서 가르침을 받은 뛰어난 성경학자였습니다. 세 사람이 함께 모였을 때, 위트니스리는 버네트씨가 주님을 위한 워치만니의 간증을 감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버네트씨는 성경 지식의 정확성을 강조했고 워치만니는 생명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위트니스리가 워치만니와 함께 보낸 시간 동안 워치만니는 주님의 달콤함과 사랑스러움과 매력과 신선함으로 위트니스리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 기간은 주님을 따르는데 있어서 위트니스리에게 새로운 시작을 주었습니다. 위트니스리로 하여금 지식에서 생명으로 돌이키는 기본적인 전환을 갖게 했습니다. 워치만니와 함께 보내는 그러한 기간으로 인해 위트니스리는 주님과 더 친밀한 교통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너무나도 보배로왔습니다. 그러한 체험은 심지어 위트니스리가 구원받은 체험보다 더욱 큰 것이었습니다. 워치만니와 같이 있었던 기간은 그 이후 오십 구년 간(1931년 부터)에 걸친 주님 안에서의 위트니스리의 노정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영원토록 위트니스리는 그 기간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어떠한 긍휼과 은혜였는지요.

워치만니가 떠나기 전 날, 그가 떠난 후 다른 사람들이 위트니스리에 대해 워치만니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오해할지 모르지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위트니스리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도시에 나와 함께 서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워치만니와 함께 보내는 그러한 기간으로 인해 위트니스리는 주님과 더 친밀한 교통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너무나도 보배로왔습니다.

그러나 워치만니가 떠나던 날 한 가지 일이 발생했습니다. 위트니스리가 떠났던 교파의 이사회의 한 형제가 그날 저녁에 워치만니가 곤란 가운데 있는 한 신자를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왔습니다. 위트니스리가 워치만니가 떠났다고 말하자, 그 둘은 약간의 교통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여름이어서 그들은 해변으로 걸어 갔습니다. 그날 저녁 그들은 10시까지 아주 긴 교통을 가졌습니다. 이 형제는 위트니스리에게, “오늘 저녁 자네는 이 바다에서 반드시 내게 침례를 주어야 하네.”라고 말했습니다. 위트니스리는 얼마 동안 주저하다가 결국 그에게 침례를 주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위트니스리의 집에서 모임이 시작됐습니다. 위트니스리는 워치만니에게 발생했던 일을 편지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1. 워치만니가 위트니스리를 방문함

이듬해 사월, 워치만니는 위트니스리에게 와서 주의 회복으로 확증하고 그들을 강화시켰습니다. 그때 그는 위트니스리의 집에서 약 십 일 간 머물렀습니다. 그는 저녁 시간에는 그들의 집회 장소에서 그들에게 말씀을 공급해 주었고 오전에는 중화 자립회의 예배당에서 교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집회 참석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고 그곳의 주의 회복 안에 있는 교회가 건축 되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그 기간에 위트니스리는 작년 그와 함께 황신에 있을 때 주님이 어떻게 그로 그분을 섬기도록 부르셨는가에 대해 워치만니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이에 대해 워치만니는 아무런 논평도 하지 않았습니다.

  1. 위트니스리: 주님을 섬기도록 부르심 받음에 응답함

구원받던 그 날 위트니스리는 일생을 복음 전하는 데 드리고자 갈망했기 때문에, 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주님은 이 일을 그에게 상기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동생이 전문학교 교육을 마치도록 도와야 한다고 변명했습니다. 동생이 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주님은 다시 그에게 직장을 내려놓고 전시간으로 복음을 전할 것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때 그는 그의 운명이 주님을 섬기는 데 바쳐지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이 부족하여 감히 이 일을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구원받던 그 날 위트니스리는 일생을 복음 전하는 데 드리고자 갈망했기 때문에, 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주님은 이 일을 그에게 상기시켰습니다.

위트니스리의 고향에서 교회가 일으켜진 후에도 그는 여전히 직장을 가진 채 모임을 돌보았습니다. 1933년, 교회가 세워진 지 일 년 되었을 때 주님의 역사가 갑자기 흥왕하여 그의 시간을 더 많이 드릴 필요가 있었습니다. 8월 1일부터 21일까지 삼 주 동안 그는 주님과 크게 씨름을 하였습니다. 그에게는 주님이 직장을 내려놓고 믿음으로 그분을 섬기도록 나를 부르신다는 깊은 느낌이 있었지만, 그에게 믿음이 부족하였으므로 감히 분명한 행동을 취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교회 안의 모든 형제들 가운데,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 위트니스리와 그의 동생만이 비교적 수입이 많았습니다. 이 때문에 교회의 대부분의 필요를 그 두 사람이 은밀히 돌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르심이 임하여 그에게 직장을 내려놓으라고 하실 때 그는 이 모든 필요를 고려했습니다. 만일 그가 직장을 내려놓는다면 교회의 헌금 액수가 줄어들 뿐 아니라 또한 다른 사람이 그의 필요를 돌보아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 일에 있어서 상당히 씨름했습니다.

주님과 삼 주 동안 씨름한 후, 그는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었기 때문에 8월 21일 기도집회를 마치고서 인도하는 두 형제에게 그의 상황을 설명해 주고 그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날 밤 11시가 지나서 서재에서 주님 앞에 나아가 무릎을 끓었습니다. 주님은 즉시 그를 책망하시면서, “네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떠났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히3:12). 그는 마음 속으로, “나에게는 아내가 있고 돌보아야 할 세 아이가 있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주님은 그에게,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답변하셨습니다(마 6:32-33). 그때 그는 그가 반드시 전시간으로 주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에 대해 분명해졌습니다. 그로 주저하게 하는 유일한 요인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믿음의 부족이었습니다. 그는 그곳에 주님이 계심을 깊이 느꼈고, 그분의 임재가 너무도 참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시점에서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그에게, “만일 네가 내 말을 받으려면 받으라. 그렇지 않으면 나는 너에 대해서는 끝났다.”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주님이 이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즉시 주님이 그에게서 떠나셨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는 더이상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아멘”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습니다. 결국 그에게는, “좋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외에 달리 길이 없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인도하는 두 형제들은 그에게, 그들의 기도를 통해 그 일이 주님에게서 나온 것이고 그가 마땅히 직장을 내려놓고 전시간으로 주를 섬겨야 함을 느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때 그는 그가 반드시 전시간으로 주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에 대해 분명해졌습니다.  

다음날 그는 직장에 사표를 내러 갔습니다. 사표를 낸 뒤 우체국에 갔을 때, 일본의 점령 아래 있는 만주국 수도인 장춘에서 그에게 보내 온 한 통의 편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편지를 펴보고서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것은 그의 일생에 처음 받아 본 다른 지방으로부터 주님을 위해 말씀을 전해 달라고 보내온 초청장이었습니다. 그는 사표를 내자마자 이 편지를 받았으므로, 그가 사표낸 것에 대한 주님의 분명한 확증인 것 같아서 큰 힘과 격려를 얻었습니다. 그는 그 초청을 수락하고 그곳에 갔습니다. 그의 방문을 통해 그 지방에서 모임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장로회의 전도사와 장로와 집사와 그외 사람들을 포함하여 약 이십여 명이 주의 회복으로 돌아왔고 그 날 강가에서 그는 그들에게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십 칠 일 간 머물렀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그가 다니던 직장의 경영자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그는 위트니스리를 보내고 싶지 않아서 승진을 시켜주고 월급을 올려주겠다고 제의했습니다. 그때가 구월 말이었습니다. 그는 고려하기 시작했는데, 그의 회사의 정책으로는 연말에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는 삼 개월만 더 일하면 보너스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 후에 사직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유혹을 받았습니다.

    1. 워치만니에 의해 확증됨

고향에 돌아왔을 때, 워치만니로부터 온 한 통의 편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편지 봉투를 보고서 상해로부터 보내온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그것을 열어서 읽어보았습니다. 보낸 날짜는 팔월 십 칠 일, 바로 그가 주님과 씨름하던 날이었습니다. 편지의 내용을 이러했습니다. “이 형제님, 당신의 장래에 관하여 나는 당신이 전시간으로 주님을 섬겨야 한다고 느낍니다. 당신은 어떻게 느끼는지요? 주님이 당신을 인도하시기 바랍니다.” 그 조그마한 메모지가 그에게 어떠한 힘있는 확증이 되었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 조그마한 메모지는 경영자로부터 온 편지상의 제의를 일축해 버렸습니다. 그때 그 마음은 뛰었고 그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일은 결말이 났다. 누가 내게 전세계를 준다 해도 나는 그것을 취하지 않겠다. 내일 나는 사무실에 가서 경영자에게 그의 좋은 제의를 거절하겠다고 말할 것이다.” 그 다음날 그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반드시 상해로 가서 워치만니에게, 왜 팔월 십 칠 일 그날 그 메모지를 그에게 보내주었는지를 물어야 겠다고 느꼈습니다.

  이 형제님, 당신의 장래에 관하여 나는 당신이 전시간으로 주님을 섬겨야 한다고 느낍니다. 당신은 어떻게 느끼는지요? 주님이 당신을 인도하시기 바랍니다.

상해에서 워치만니는 위트니스리에게, 그가 유럽에서 중국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배가 지중해를 항해하고 있었을 때의 일을 들려 주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선실에서 중국땅의 주님의 역사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 때, 위트니스리가 전시간으로 주를 섬겨야 함을 알려 주는 메모지를 보내야 겠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가 이 일을 위트니스리에게 말해 주었을 때, 위트니스리는 워치만니가 온전히 주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워치만니는 멀리 떨어진 지중해에 있었고 그는 지중해에서 수천 리 떨어진 곳에서 주님과 씨름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그를 다루시는 그 시간에 그에게 편지를 보낼 부담을 가질 수 있었겠습니까? 이것은 그로 하여금 워치만니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더욱 믿게 했습니다. 워치만니가 그에게 그와 동역할 것을 요구할 필요도 없이 그는 이미 그를 따르고 그와 동역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사건을 그들이 주님을 위해 동역하게 된 기본적인 요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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