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부르심 안에서의 관계:1925-1935

B. 처음 접촉

위트니스리성경을 철저히 알기 위해 추구하고 있을 때, 그의 고향에 “새벽별”이라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간행물이 들어왔습니다. 그는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호들을 수집하여 그것들을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그는 종종 워치만니라고 서명된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메시지들은 성경 진리에 있어서 매우 특출했고 전체 간행물 중에서 가장 뛰어난 부분이었습니다. 그것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는 더욱 그것을 읽기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독자에게 그 저자가 말하는 방식을 보고서 위트니스리는 그가 필히 육칠십 세가 되는 연로한 그리스도인일 것이라고 상상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워치만니는 위트니스리보다 두 살 위인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그 후, 어느 호의 공고문에서 위트니스리는 워치만니 형제님이 “기독도보”라는 자신의 간행물을 낸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즉시 그 간행물을 구독하였습니다. 1925년부터 1927년까지, 위트니스리는 이십 사 기 전부를 받아 보았습니다. 매 간행물을 받을 때마다, 가능한 한 그는 당일에 내용 전체를 다 읽었습니다. “기독도보”를 구독한 것 외에도 그는 워치만니가 출판한 영적 생명에 관한 모든 책자들을 구입했습니다. 이러한 책자들로부터 그는 생명에 있어서 가장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러한 서적들에 감사했으며 매우 귀히 여겼습니다. 동시에 그는 뉴톤 형제회가 치푸에서 발간한 간행물인 “내 발에 등이요”에서 워치만 니 형제님의 메시지를 읽었습니다. 이러한 메시지들도 그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1. 워치만니와의 서신왕래

이러한 나날 동안, 위트니스리는 워치만니와 편지로 교제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그들의 접촉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편지로 성경에 관하여 워치만니에게 질문했고, 워치만니는 모든 질문에 대해 일일이 답변해 주었습니다. 한 편지에서 그는 워치만니에게, 성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가장 좋은 책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워치만니의 회신에서 그는, 그의 아는 바에 의하면 성경을 아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책은 다비(John Nelson Darby)의 “성경개관(Darby's Synopsis of the Books of the Bible)”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또한 그는 덧붙여서 너댓 번 읽지 않고서는 그안의 뜻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팔 년 후, 위트니스리가 워치만니의 손님으로 상해에 머물고 있을 때, 워치만니는 위트니스리에게 그 책 한 세트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러한 나날 동안, 위트니스리는 워치만니와 편지로 교제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그들의 접촉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편지로 성경에 관하여 워치만니에게 질문했고, 워치만니는 모든 질문에 대해 일일이 답변해 주었습니다.

위트니스리는 구원받은 후 약 이 년 동안 여전히 중화 자립회 주일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워치만니의 저서를 통하여 교파가 잘못되었다는 것과 정상적인 교회가 어떤 것인지를 알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그 안에서는 교파가 끝났지만, 그는 여전히 거기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 교파에 있던 한 청년이 위트니스리에게 주님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남과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고 하루는 그에게, “우리가 구원받은 것을 어떻게 알수 있지?”하고 물었습니다. 위트니스리는 그 기회를 붙잡아 그로 구원의 확신을 갖도록 도와 주었으며, 그 주제에 관해 워치만니가 쓴 책자를 주었습니다. 그 책자를 읽은 후 그는 분명해졌고 또한 구원받았습니다. 그가 바로 두종신 형제입니다. 그 두 사람의 관계는 그들의 목사님이 여호수아와 갈렙의 관계로 비유할 만큼 발전했습니다. 후에 두종신 형제는 직장 때문에 상해로 이사갔는데, 위트니스리는 그에게 그곳에서 니 형제님이 사역하는 집회에 참석하라고 권했습니다. 칠 년 후, 그는 상해 교회의 앞선 세 장로들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1927년 말, 중화 자립회는 위트니스리를 이사회의 한 임원으로 선정했습니다. 그 같은 젊은이에게 이것은 예외적인 영예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그는 그 직위를 받을 수 없었고, 그들의 교파 안에 더이상 머물기를 원치 않는다고 그들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그들에게 그들의 생명책에서 그의 이름을 제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후 그는 자주 형제회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했고, 매주 일곱 번 있는 그들의 집회에 다 참석했습니다. 그는 그들 가운데서 진지하게 그들의 모든 교리를 흡수했습니다. 그는 1932년까지 그들과 함께 했습니다. 1930년, 그가 그들 가운데 있을 때 그들의 인도자인 버네트씨(Mr. Burnet)가 바다에서 그에게게 침례를 주었습니다.

1931년 8월 어느 날, 위트니스리는 길을 가다가 갑자기 형제회에서 받은 모든 가르침이 거의가 교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그가 많은 지식을 쌓았지만, 그 자신은 여전히 죽어있고 침체되어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가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고 매주 일곱 번씩 집회에 참석했지만, 그 자신은 얼마나 냉담하고 열매가 없었는지 모릅니다. 이때 그는 깊고 참된 회심을 체험했습니다.

  1. 주님께 돌이킴

이튿날 새벽 위트니스리는 집 근처의 작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주님께 필사적으로 부르짖으며 애통해했습니다. 매일 아침 그는 그 산에 올라가서 기도했습니다. 그날부터 그는 별로 말을 하지 않고 다만 기도하기를 원했습니다. 이러한 체험은 8월부터 그 이듬해 2, 3월까지 몇 개월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이튿날 새벽 위트니스리는 집 근처의 작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주님께 필사적으로 부르짖으며 애통해했습니다.  

위트니스리가 주님을 추구하고 있었을 때, 워치만니는 1931년 9월에 상해에서 제2차 이기는 자의 집회를 가지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위트니스리는 그와 통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집회에 참석하겠다고 등록했습니다. 그러나 일본군이 동북쪽(산동성 근처)을 침략함으로써 위트니스리는 그 집회에 참석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1932년 두종신 형제는 상해에서 치푸로 와서 위트니스리를 보러 왔습니다. 두종신형제는 위트니스리에게 상해 교회의 좋았던 집회들고 좋았던 일들에 대해 말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위트니스리로 하여금 더욱 상해로 가서 성도들과 함께 그곳의 축복에 참여하기를 열망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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