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움직이심 안에서의 동역: 1934-1936

E. 사역의 확장에 있어서의 동역

1935년 5월 말, 위트니스리는 다시 치푸로 돌아왔습니다. 워치만니는 영국을 방문하기로 결정했었지만, 영국에 가기 전에 그의 아내와 함께 위트니스리의 고향 치푸에 와서 잠깐 휴식을 취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칠월에 니 자매님이 왔고, 얼마 후에 니 형제님도 왔습니다. 그들은 위트니스리의 집에서 약 한 달 동안 묵었습니다. 워치만니는 며칠 동안 제남에 있는 스턴스(Stearns)형제의 집에서도 묵었는데, 스턴스 형제는 미국 장로교의 한 의사였습니다. 그 의사는 워치만니로부터 많은 영적 도움을 받았으며 자주 가족들을 데리고 휴가를 보내기 위해 제남에서 치푸로 오곤 했습니다.

  1. 부흥

그 때 워치만니와 교회들은 약간 침체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기독교 잡지에서 부흥에 대해 말하는 한편의 기사를 읽고서, “우리에게는 이러한 부흥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얼마 후, 그가 스턴스 의사 집에 묵고 있던 어느 날 저녁, 테니스장에서 주님을 앙망하고 있을 때, 그는 다시 한 번 성령의 옮겨부음을 체험했습니다. 그 후 그는 그리스도의 이기는 생명에 관하여 말하는 특별집회를 한 번 가졌습니다. 그때의 특별집회는 치푸교회에게 한 차례 부흥을 가져다 주었고, 위트니스리도 그리스도를 이기는 생명으로 체험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1. 복음을 전파함

그때의 부흥으로 인해 워치만니는 영국 여행을 취소하고 상해로 돌아왔습니다. 주님이 부흥을 일으키셨기 때문에, 그들은 동역자들과 함께 나가서 주요 도시들에 주의 회복을 확장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위트니스리는 북부의 사역을 위해 보내심을 받고 옛 수도 북경 부근에 있는 중국 북부의 가장 큰 항구 도시인 천진으로 갔습니다. 이것은 워치만니의 직접적인 지시 아래 행해졌습니다. 그 때 위트니스리는 이 일에 관해 그를 만나려고 상해로 갔습니다.

1936년 1월, 위트니스리는 왕포진 자매와 훈련생인 한 젊은 자매와 두 젊은 동역자 형제와 함께 그곳에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얼마 후 워치만니는 북경과 천진에 와서 그곳의 사역의 시작을 강화시켜 주었습니다. 그들은 워치만니를 위해 한 주간의 특별집회를 안배하여 상류층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특별집회를 마치고 워치만니는 다시 상해로 돌아와서 그곳에서 계속 주의 회복을 위해 사역했습니다.

저녁에 그들은 그 형제의 집 뜰에서 도지사와 기타 고위 관료들과 그들의 아내들과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같은 해 5월, 동료들 가운데 복음을 전해주는 데 열심 있는 한 하남성 정부의 고위 관료인 그리스도인 형제는 자기 동료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기 위해 왕포진 자매를 초청했고, 워치만니와 위트니스리도 초청했습니다. 그들 두 사람은 그의 요청대로 그곳에 갔고 그의 집에서 약 일 주일 간 묵었습니다. 저녁에 그들은 그 형제의 집 뜰에서 도지사와 기타 고위 관료들과 그들의 아내들과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 집회는 상당히 효과적이었습니다. 낮에 워치만니와 위트니스리는 많은 시간을 교통하면서 보냈습니다. 그때 워치만니는 또다시 약간 침체되었는데, 어느 날 위트니스리에게, “만일 화수은 자매가 여전히 살아 있다면 우리의 영적인 상태는 더 높이 들어올려질 텐데.”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위트니스리로 하여금 워치만니가 어떤 영적인 도움을 구하고 있음을 깨닫게 했습니다.

그 해 가을, 위트니스리는 북경에서 오순절 운동을 접하기 시작했고, 방언을 하기 시작했으며, 다른 사람들도 같은 것을 하도록 도왔습니다. 이 소식이 상해에 전해지자 워치만니는 고린도 전서 12장 30절 말씀으로 위트니스리에게 전보를 보냈습니다.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그 짤막한 전보는 위트니스리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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