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해 만에
전쟁 동안 위트니스 리는 북쪽에, 워치만 니는 서부 내륙에 있었습니다. 여섯 해가 넘어서야 두 사람은 상해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위트니스 리는 치푸에서 해 온 실행을 두고 조언을 구했습니다. 생명과 그 영과 일과 교회들과 주의 회복을 두고 교통했습니다. 워치만 니는 그 실행을 다른 교회들에서도 해 보라고 권했습니다.
왕 피스 자매와 위트니스 리는 워치만 니의 사역이 회복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워치만 니는 거스르는 형제들이 있다는 이유로 상해에서 사역하기를 마다했습니다. 회복에 앞서 부흥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겉사람이 깨어짐
이 무렵 워치만 니가 거듭 강조한 것이 있습니다. 겉사람이 깨어져야 그 사람의 영이 성령과 함께 풀려 나온다는 것입니다. 공개적인 사역에서도, 사람을 하나하나 만나는 자리에서도 그랬습니다. 위트니스 리는 여기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상해의 부흥
위트니스 리가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부흥이 시작되어 모이는 수가 늘었습니다. 1942년 교회가 닫혔던 일로 흩어졌던 성도들이 돌아왔습니다. 소식이 온 나라로 퍼졌습니다.
복건과 광동의 교회들이 방문을 청해 왔고, 1948년 4월에 전국 집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1947년 끝 무렵 남쪽 여정에 올라 홍콩과 광주와 산두와 하문과 복주를 다녔습니다. 워치만 니의 고향인 복주에서는 세 주 동안 부흥이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위트니스 리는 중국어 복음 찬송가를 짓고 엮었습니다. 워치만 니가 원고를 보고 복음 찬송들을 다듬었습니다.
이 쪽은 www.witness-lee-watchman-nee.org — Resuming Fellowship with Watchman Nee: 1946 의 내용을 한국어로 정리한 것입니다. © Living Stream Minis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