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1948년 11월과 1949년 2월의 긴급 동역자 집회 — 누가 남고 누가 떠날 것인가.

1948년 11월, 상해

워치만 니가 긴급 동역자 집회를 소집했습니다. 중국에 남을 것인지 떠날 것인지를 두고 기도하며 인도를 구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위트니스 리는 그때 항주에서 이주에 관한 집회를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집회에서 워치만 니는 위트니스 리가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일을 주님 앞에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북중국의 정세가 바뀌면서 청도의 장 우청과 선 펑루와 류 샤오량이 대만으로 옮기도록 정해졌습니다.

1949년 2월

두 번째 동역자 집회에서 워치만 니는 위트니스 리가 떠나야 한다는 것을 다시 말했습니다. 자기와 남은 동역자들은 남아 그 일을 위해 희생하겠다고 했습니다. 한쪽이 없어지더라도 교회가 이어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타이베이의 자오 칭화이와 장 우청과 선 펑루와 류 샤오량과 장 위란에게 장로로 세워 교회를 세우게 하는 편지가 갔습니다.

1949년 5월

위트니스 리는 복주를 거쳐 대만으로 갔습니다. 워치만 니는 훈련생 셋을 보내 돕게 했습니다. 형제 하나와 자매 둘이었는데, 형제는 물러났고 자매 둘은 남았습니다.

이 쪽은 www.witness-lee-watchman-nee.org — Fellowship Regarding Migration 의 내용을 한국어로 정리한 것입니다. © Living Stream Minis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