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초, 홍콩으로
사역이 회복된 뒤 워치만 니는 홍콩을 찾았고, 본토로 돌아가기 전에 만나자고 위트니스 리에게 전보를 보냈습니다. 위트니스 리는 타이베이의 집회 때문에 곧바로 가지 못했습니다.
그가 홍콩에 이른 것은 1950년 2월 16일이었고 여섯 주쯤 머물렀습니다. 교회의 장로인 쉬 진친 형제가 공항에서 맞았습니다.
교회의 실제적인 책임
도착한 이튿날 아침 홍콩의 동역자 모임에서, 워치만 니는 동역자와 장로와 집사의 모든 섬김을 위트니스 리가 배치하도록 공개적으로 맡겼습니다. 교회의 기초를 놓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말하는 것
도착한 날 저녁 홍콩의 특별 부흥 집회에서 워치만 니가 말해 보라고 했습니다. 위트니스 리는 당신이 계신 자리에서는 자기에게 말할 부담이 없다고 하며 사양했습니다. 워치만 니가 이어서 사역했습니다.
문서의 배포
위트니스 리는 두 번째 중국어 찬송가 원고를 내놓았고, 워치만 니가 포도나무 생명을 노래한 635장을 다듬었습니다.
복음서방을 세 곳에 두기로 했습니다. 상해는 워치만 니, 타이베이는 위트니스 리, 홍콩은 웨이 형제가 맡고, 판권은 세 곳이 함께 갖기로 했습니다. 1975년에 이 구도가 다시 짜여, 중국어 출판은 대만이, 영어는 미국의 리빙 스트림 미니스트리가, 홍콩은 그 지역 배포를 맡게 됩니다.
헤어짐
위트니스 리는 대만에서 있은 축복을 나누며 본토로 돌아가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워치만 니는 자기 책임을 불붙은 집에 비유해 답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위험이 따르는 것을 알지만 형제자매들이 아직 그 안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3월 중순 기차역을 통해 조용히 떠났습니다. 위트니스 리는 4월 1일 타이베이로 돌아갔습니다.
이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이후 오간 편지는 없었고, 워치만 니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건너 들리는 소식뿐이었습니다. 옥중의 마지막 해에 관해서는 워치만 니의 간증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쪽은 www.witness-lee-watchman-nee.org — Witness Lee's Last Contact with Watchman Nee 의 내용을 한국어로 정리한 것입니다. 당시 이야기의 전문은 그곳에서 영어로 보실 수 있습니다. © Living Stream Minis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