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접촉

잡지에서 워치만 니의 글을 읽고 편지를 주고받기까지, 그리고 1931년 산에서 부르짖던 여덟 달.

글로 먼저 만나다

1925년 위트니스 리는 고향에서 『계명성』(The Morning Star)이라는 잡지를 접했습니다. 거기에 실린 워치만 니의 글을 읽고 그는 글쓴이가 나이 지긋한 사람이려니 여겼습니다. 실제로는 자기보다 두 살 위였습니다.

그는 워치만 니가 내던 『기독도보』(The Christian)를 1925년부터 1927년까지 구독해 스물네 호를 모두 받아 보았고, 영적 생명에 관한 그의 책들도 사 보았습니다. 치푸에서 나오던 뉴턴 계열 간행물 『내 발의 등』에 실린 글도 읽었습니다.

편지를 주고받다

먼저 편지를 쓴 쪽은 위트니스 리였습니다. 성경에 관해 물었습니다.

워치만 니는 존 넬슨 다비의 『성경 강요』(Synopsis of the Books of the Bible)를 읽으라고 답했습니다. 제대로 알려면 네다섯 번은 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덟 해 뒤 상해에서 워치만 니는 그 책을 그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워치만 니의 글을 읽으면서 위트니스 리는 교파주의를 버렸습니다. 구원받은 뒤 두 해 반쯤은 중국 자립 교회에 머물렀습니다. 그 무렵 그는 두중친(Du Chung-chin)이라는 젊은이가 구원의 확신을 얻도록 워치만 니의 책으로 도왔는데, 이 사람은 뒷날 상해 교회의 장로가 됩니다.

교파를 떠나다

1927년 끝 무렵 중국 자립 교회가 그를 이사로 뽑았습니다. 젊은 사람에게는 드문 일이었습니다. 그는 그 자리를 마다하고 교파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형제회 집회로 옮겨 1932년까지 한 주 일곱 번의 모임에 빠짐없이 나갔습니다. 1930년에는 버넷(Burnet) 씨에게 바다에서 물에 잠기는 침례를 받았습니다.

주님께로 돌이킴

1931년 8월, 그는 자기 안에 교리만 쌓였을 뿐 영적 생기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한 주 일곱 번을 모이면서도 차갑고 열매가 없었습니다. 깊은 회개가 왔습니다.

그 뒤 이듬해 2~3월까지 여러 달 동안 그는 아침마다 집 근처 산에 올라 주님께 부르짖으며 울었습니다. 말하는 일보다 기도하는 일에 자기를 두었습니다.

1931년 9월에는 상해에서 열리는 워치만 니의 두 번째 이기는자 특별집회에 등록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만주를 침공하는 바람에 가지 못했습니다.

1932년 봄, 상해에서 돌아온 두중친이 그곳 소식을 전했습니다. 위트니스 리는 상해로 가 교회의 교통 안에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습니다.

이 쪽은 www.witness-lee-watchman-nee.org — Initial Contact 의 내용을 한국어로 정리한 것입니다. 편지와 인용문 전문은 그곳에서 영어로 보실 수 있습니다. © Living Stream Ministry.